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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는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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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는 늘 혼자 앉아 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걸까? 친구를 기다리는 걸까? 길고양이 혼자 앉아 있으면 외로워 보인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머물 곳 없는 나그네처럼 보인다. 길바닥에 떨어진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모습은 배가 고파 보여서 측은하다. 새끼 고양이에게 길바닥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를 물어다 주는 어미 고양이에게서 가난한 모정을 본다. 아이들 소리 차 소리에 놀라서 숨는 길고양이에게서 길에서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본다. 추운 겨울 양지바른 언덕에서 가냘픈 햇살에 몸을 녹이는 길고양이는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길고양이는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감사합니다.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는 기억을 그린다(고갈산, 봉래산, 봉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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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돌아오시는 어머니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가 밭에서 키운 채소를 어머니가 잘 다듬어서 한 단씩 잘 묶어서 큰 다라이에 한가득 담아서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서 팔아서 쌀도 사고 반찬 재료도 사고 우리 형제들 먹을 과자도 사 왔다. 어머니가 사 온 과자를 먹으라고 내어 놓으면 형제들이 나눠 먹다가 가끔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두 번 다시 과자 안 사준다고 화를 내면서도 다음 날 또 과자를 사 오셨다.   내가 살던 집의 마루에서 보이는 저 그림과 같은 산등성이의 길을 따라 어머니가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시면 해 질 녘에야 저 산등성이에 돌아오시는 어머니가 나타났다. 저 고갯길은 부산 영도에 있는 고갈산과 이어지는데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고갈산을 봉래산으로 부르고 있다.   나와 형제들은 어머니가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저 그림에서 보이는 길을 돌아서 시장을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동네방네 뛰어다니면서 놀다가 해 질 녘이 되면 어머니가 나타나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어머니가 나타나면 "엄마다!"를 외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저 산등성이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가끔 저 산등성이가 몹시도 그리울 때가 있다. 

아버지의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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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주 어린 시절 국민학교(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아버지가 일하러 가실 때는 언제나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셨다. 아버지가 일하시던 밭은 영도 아치섬이 보이는 산중턱이었다. 아치섬은 조도라고 불리기도 하며 지금은 한국해양대학교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는 조그만 섬이었다. 그때 그 시절의 라디오 아버지가 일하시는 밭에서 아치섬까지는 직선거리로 1Km 정도 된다. 나는 아버지를 잘 따라다녔다. 아버지가 라디오를 들으며 일하시는 동안 나는 산중턱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아버지가 일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앉아있기도 했다. 부산시 영도구에 있는 아치섬(조도)의 1950년대의 모습 출처 : 국제신문 아버지는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시며 노래도 듣고 뉴스도 들어셨다. 뉴스를 들으면서 정치 뉴스가 나오면 "에라이 시부럴 넘들~"이라면서 욕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일을 마치면 지게에 라디오를 싣고 다시 집으로 오셨다. 술을 한잔하시고 주무실 때도 라디오를 켜 놓고 주무셨다. 아쉽게도 그때 그 모습들은 사진 한 장 없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끝>